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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기후다

2024-11-06조회수 7341
작성자
김태우 지음

존재론적 인류학의 기후 실천
몸이 기후다


몸이 기후위기를 만들고,
바로 그 몸이 위기의 기후를 앓는다!

존재론적 인류학, 신유물론, 동아시아 사유의 관점에서
인류학자가 ‘불편하게 하기’의 방식으로 말하는 인류세의 기후위기


김태우 지음 | 140×210 | 243쪽 | 무선 | 18,000원
2024년 11월 15일 | ISBN 978-89-8222-779-0 (03300)



존재론적 전환과 동아시아 사유의 연결을 통해 기후위기를 바라본 최초의 책. 『몸이 기후다』는 기후위기를 야기한 분리분절의 생각(인간-자연 이원론 같은)이 우리의 일상적 말과 행동에 관철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인다. 자연, 환경, 기후, 탄소, 기온 등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들과, 그에 연결된 실천들에 이미 들어와 있는 기후위기의 문제를 말한다. 이 책은 멀리 가지 않고 동아시아 그리고 한국에서 기후위기를 이야기한다. 인류학의 시선으로 기후위기를 바라보며, 기후를 대하는 우리의 생각의 방식, 몸과 기후의 관계, 나아가 기후위기 시대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모색한다.

장기간 몸과 의료에 대한 현장연구를 진행해온 인류학자인 김태우 경희대학교 교수는 존재론적 인류학과 연결하여, 기후위기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실마리를 몸에서 찾는다. 기후위기를 유발하는 행위자이면서 그 기후위기가 몸의 위기로 드러나는 바로 그 몸에서 희망을 찾는다.




출판사 리뷰


“기후위기는 말의 문제다”
말의 기저에 놓여 있는 생각의 틀의 문제다


기후 문제의 아이러니는 하나둘이 아니다. 기후위기는 가속화되는데, 그에 대한 응대는 너무 느리다. 기후위기를 체감하는 일이 일상화되고 있는데, 기후 문제는 너무 멀게 느껴진다. 한국 사회에서 기후문제에 대한 논의는 아직 활성화되지 못했는데, 기후위기라는 용어는 벌써 식상하다.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몸이 기후다』의 저자인 인류학자 김태우 경희대학교 한의학과 교수는 말의 문제에서 시작해보자고 말한다.

친환경 제품, 친환경 건물, 친환경 에너지…. 친환경을 일상적으로 말하고 실천하지만 ‘환경’이라는 말에 내재한 생각의 방식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친환경은 계속해서 인간과 환경의 거리두기의 지속일 수밖에 없다. ‘둘러싼 경계’라는 ‘환경’의 의미에서부터 환경은 중심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심각한 환경문제에도 여전히 ‘환경’은 주변화되어 있다. “환경”이라는 말에 관철되어 있는 분리의 틀은 단지 말로 머물지 않고, 행동을 추동하고 그리하여 그 분리를 실재로 만든다. ‘자연보호’에도 자연과 인간 사이 경계선은 분명하다. 저자는 존재론적 인류학과 신유물론의 논의들이 강조하는 말의 물질성을, 기후 관련 언어들과 연결시키며,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들에 내재한 기후위기의 기반을 드러내 보이고, 그에 대한 흔들기를 시도한다.

저자는 번역어인 환경, 자연이 서구로부터 유입되어 개항기 동아시아에서 자리 잡은 시기부터, 그 말들이 도시, 위생 등 분리의 틀을 가진 여타의 번역어들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분리를 실제화하는 역사의 장면에 주목한다. 분리의 경험으로 당도하는 동아시아의 근대를 짚으면서, 거기서부터 인류세의 기후위기를 논의하자고 제안한다.

“인류세는 쓰레기의 시대”
탄소, 핵폐기물, 플라스틱…
자연의 분해·흡수 순환고리로 돌아가지 못하는
쓰레기들이 증명하는 시대


난해해 보이지만, 인류세는 어렵게 이해될 필요가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류세의 본질은 그것이 쓰레기의 시대라는 것이다. 인간이 배출하는 쓰레기가, 대기에 이산화탄소로, 지표에 핵폐기물로, 바다에 부유하는 플라스틱으로 분해·흡수되지 못하는 시대가 바로 인류세이다. 지구의 역사에 1.5도 상승이라는 기록을 쓰레기로 기입하고 있는 시대가 인류세인 것이다.

지구의 기온을 들어 올릴 정도의 엄청난 쓰레기는 인간의 ‘쓰고버림주의’가 만들었다. 그리고 쓰고버림주의는 대다수의 인류에게 버릴 결심을 하게 하는 근현대문명과 그 문명의 전 지구화가 만들었다. 저자는 그리하여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이다’가 아니라, ‘당신이 배출하는 것이 당신이다’를 내세운다. 인간화된 ‘먹기’가 아니라, 인간 바깥 존재들과의 연루를 직시할 수 있는 ‘배출’을 통해 인류세에서 우리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학자인 김태우 경희대학교 교수는 몸과 의료에 관한 장기간의 현지 조사를 통해 몸을 규정하는 시선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며, 우리는 몸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본다는 것을 논의해왔다. 김태우 교수는 이 책에서 몸기후, 기후몸에 대한 논의를 통해 지구사와 인류사가 일상적으로 얽혀 있음을, 기후재난의 시대에 이 얽힘이 더 깊이 휘말리고 있음을 강조한다. 지금의 기후위기를 존재론적 인류학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기후를 대하는 우리 생각의 방식의 문제를 조명하고 그 너머를 모색한다.

“기후위기는 몸의 위기”
몸이 배출하는 엄청난 온실가스가 만든 기후위기가
다시 몸을 위기로 내모는 지금의 상황에서,
분리의 체계를 넘어서기 위한 연결의 실마리로서
바로 그 몸에 주목하다


저자는 분리분절의 체계를 넘어서기 위한 관계의 장으로 몸과 기후의 연결성에 주목한다. 먹고, 입고, 이동하고, 기거하며, 몸이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기후위기를 만든다. 기후위기는 다시 건강의 위기, 실존적 위기를 직면하게 한다. 이 몸-기후-몸의 연결에서 인간과 자연,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성을 재고할 수 있고, 바로 그 연결의 장에서 다시 다른 관계를 모색하는 작업은 기후위기 너머를 위한 의미 있는 시도가 될 수 있음을 논의한다.

저자는 존재론적 인류학, 신유물론, 동아시아 사유를 오가며 기후위기를 야기한 생각의 방식을 넘어설 수 있는 탈기후위기 시대의 사유를 모색한다. 인트라-액션, 상응, 복수의 자연, 인류탄소, 사회기온상승 등, 전에 없던 말들을 제시하며 그 말들의 기저에 있는 생각의 틀과 기존의 언어들에 내재한 생각의 방식을 대면시키면서, 새로운 말과 사유, 그와 연결된 기후행동들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차례


추천의 글
들어가며: 몸, 얽힘, 기후

1장 ‘환경,’ 몸-기후, 불편함의 인류학
벨리즈의 조각 잠
인류학, 팔 할이 불편함
말뿐이지 않은 말
‘환경’의 반환경주의
몸과 말의 경계를 넘어
존재론적 인류학과 비근대적 사유

2장 기후위기 생략하기
탄소집착 문명
인류세, 쓰레기의 시대
쓰레기가 말하는 시대
지구비등화
기후변화의 치외법권지
지나가는 기후위기
지구에 땅 부쳐 먹는 인간
인트라-액션과 상응
말 안 되는 시대에 소환되는 말들
응함이라는 실재

3장 자연은 하나가 아니다
자연(自然)과 자연(nature)
특별한 동음이의어
번역이 아니다
‘자연(nature)’의 탄생
순수한 자연은 없다
연결되어 있는 자연
‘도시’라는 말과 물질
변화하는 자연
자연이 바뀌면 세계가 바뀐다

4장 연결의 기후
기후의 의미
기후의 조건
탄소, 기온 집중
섭씨 1.5도의 무게
연결의 기후위기
사회기후재난, 복합명사가 필요한 시대
인류세의 기후는 여름
‘선진국’은 없다

5장 몸의 기후, 기후의 몸
기후라는 연대의 힘, 그 힘을 흔드는 위기
고기 좀 먹어본 사람들이 되다
중심의 인간과 대상
‘몸’이라는 거멀못
당신이 배출하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
기후의 몸
취약한 방벽들
기후위기, 몸의 위기
몸-기후 얽힘
관계를 앞에 둘 때
기후위기 시대의 중의법

나가며: 쓰레기통 앞에서 머뭇거리기
참고문헌




지은이_ 김태우


인류학자. 정치문화철학과 의료의 상호관계를 중심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 의료에 내재한 사유방식에 대한 관심은, 최근 존재론적 인류학과 만나면서 다시 기후에 대한 연구로 이어지고 있다. 저서로는 『의료, 아시아의 근대성을 읽는 창』(공저), 『아프면 보이는 것들: 한국 사회의 아픔에 관한 인류학 보고서』(공저), 『한의원의 인류학: 몸-마음-자연을 연결하는 사유와 치유』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불순의 철학: 얽힘-교차와 상관작용의 동아시아 존재론」, 「치유로서의 인간-식물 관계: 존재론적 인류학으로 다시 읽는 동아시아 본초론」, “Cultivating Medical Intentionality: The Phenomenology of Diagnostic Virtuosity in East Asian Medicine,” “Experiences, Expressions, and Boundary-Crossings: East Asian Tactile Diagnostics in South Korea” 등이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 기후-몸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며, 한의과대학에서 인문사회의학을 강의하고 있다.




추천의 글


알고 있던 사실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사실이 풍요로워질 뿐만 아니라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이 책이 그렇다. 저자는 기후위기를 몸의 위기로 여긴다. 지구가 아프면 내 몸이 아프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므로 자연을 해치는 문명이 결국 인간을 해치기 때문이다. 이제 세상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작동해야 한다. 이 책을 읽게 되면 기후와 몸의 연결 속에서 기후위기 문제를 바라보고 기후위기 극복을 몸으로 실천하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_조천호(대기과학자, 전 국립기상과학원장)

인류세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행성적인 것(the planetary)과 지역적인 것(the local)의 연결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지구시스템의 변화가 추상적 ‘인류’가 아닌 한 지역에 사는 개인 및 집단과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개인의 행동과 국가의 정책은 지구시스템 변화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줄까? 이 책은 동아시아에서 인류세를 바라보는 혜안을 제공한다. 그 출발점으로 ‘말’과 ‘몸’에 주목할 것을 제안한다. ‘자연,’ ‘환경,’ ‘기후’ 등 서양 개념을 번역하여 익숙하게 쓰는 말에 스며든 인간 중심적이고 이분법적 사유를 극복하기 위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고 한다. 편안함만을 추구하지 말고 불편함을 감수할 때 기후위기를 몸소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의료인류학과 지구인류학이 만나는 지점을 새롭게 개척한 작업의 결과다. 인류세 전문가뿐만 아니라 기후위기라는 말에 식상하고 지친 대중들이 꼭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_박범순(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인류세연구센터장)

몸과 기후는 멀고도 가까운 관계다. 하나였다가 분리된 관계다. 이 책은 서구의 포스트휴머니즘 철학과 동양적 세계관 그리고 인류세 담론을 능숙하게 오가며 주류 기후위기 담론의 문제를 혁파한다. 맨 처음엔 불편하게 느껴질지 모르는 이 책의 제목은 읽으면서 점차 확신으로 다가올 것이다. 마지막 책장을 넘긴 뒤, 나는 사람과 자연 모두에게 묻기 시작했다. 당신의 기후 안녕하십니까?
_남종영(환경 저널리스트, 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동물권력』 저자)




책 속으로


친환경 실천은 중요하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이 폄하될 수는 없다. 하지만 친환경이 어떠한 인간과 환경 관계의 맥락 속에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러한 고찰이 없을 때 ‘친환경’은 인간중심주의를 고착화하는, 오히려 ‘친인간’의 실천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인간과 환경, 인간과 자연을 떼어놓고 보는 생각과 행동으로 지금의 기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31쪽

다른 생각의 방식들이 있다는 것은 인류세 기후위기의 희망이다. 복수의 사유가 가진 각각의 방향성으로 현재의 주도적 사유를 다양한 측면에서 돌아볼 수 있게 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비근대 사유들의 연대도 요구되고 있다. 말과 생각과 실천을 장악하고 있는 기존 사유의 견고함을 고려할 때, 그것과 거리가 있는 생각의 방식들이 함께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39~40쪽

탄소 문명은 탄소집착 문명이다. 우리들의 자동차가 움직이기까지, 이어져 있는 연결선들을 돌아보면 그 집착적 증후가 드러난다. 땅을 파고, 바다 밑 해저를 뚫어서, 해양오염을 무릅쓰고 유조선을 띄우며, 토양오염의 위험에도 송유관을 깔아서 기어이 석유를 가져온다.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쇼크(오일쇼크)도 감내하고, 전쟁(걸프전쟁)도 불사한다. 그 집착은 원유를 뒤집어쓴 물새로 상징되는, 죽어가는 생명들을 못 본 체하게 한다.
-51쪽

지금의 탄소집착 문명의 시대는 분열적 시대다. 세상은 여전히 ‘효율적’으로 돌아가고 발전하는데, 기후위기로 인해 사는 것은 더 힘들어진다. AI는 점점 사람 같아지고 무인자동차는 무사고 기록을 이어가는데, 기록을 경신하는 고온과 극한의 가뭄, 집중호우의 상황은 뉴노멀이 되어가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마치 영화 속 장면들이 실현된 듯한데, 여름은 너무 덥다.
-53쪽

이처럼 자연의 순환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쓰레기들이 인류세의 증거다. 인류세는 쓰레기가 증언하는, 쓰레기의 시대다. 집착은 과잉을 낳고, 과잉은 쓰레기를 양산한다. 자연의 분해 흡수 능력이 마비되도록, 그리하여 지층에 시대의 증거가 남을 정도로, 쓰레기가 차고 넘치는 시대가 인류세다.
-55쪽

하지만 기후위기는 없다. 지금의 ‘위기’에도 우리의 행동은 기후위기를 부정하고 있다. ‘기후위기’라는 말을 일상으로 접하지만, 일상적 행동에서 기후위기 없는 행동을 한다. 말보다 더 강력한 행동으로 기후위기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부정의 와중에 기후위기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위기에 응대해야 할 일들이 생략되고, 기후위기 시대 다음으로 바로 가고 있다. 기후위기를 인정하지 않는 인류의 행동 속에서 기후위기는 위기라고 명명할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70~71쪽

그러므로 동아시아에서 네이처가 자연으로 번역된 것은 단순 번역이 아니다. 존재들이 의지해야 하는 본디의 이치를 환기하려는 자연(自然)과 저기 바깥에 있는 자연(nature)은 질적으로 다른 내용을 가진다. 다른 층위의 의미를 가진 말들이다. 이것은 사과-애플(apple)과 같이 등가의 무엇을 상정한 번역이 아니다. 오히려 전에 없는 대상이 이입(移入)되는 사건이다. 인간 바깥에 대상화할 수 있는, 그리고 이용 가능한 자연이 동아시아에서 대두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동아시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생각과 기표의 영토가 만들어지는 역사의 장면이다.
-104쪽

도시에 공원도 있지만, 자연과 인간의 분리가 무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원과 비공원이 구획되면서 그 분리는 강화된다. 공원은 자연을 재현하려 하지만, 도시의 일부로서의 재현이다. 호수가 아름답게 펼쳐진 도시의 공원도 있지만, 그 호수는 곧잘 ‘인공’호다. 공원뿐만 아니라, 도시에는 곳곳에 자연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 사이 분리의 표식이 있다. 가로수에도 테두리가 처져 있어서 그 두 영역을 경계 짓는다. 어떤 지자체에서는, 가로수의 냄새 나는 열매가 인간의 영역에 떨어지지 않게 망을 설치하기도 한다.
-121쪽

지금 목도하고 있는 기후재난의 문제들은 심각해지는 기후위기 속 인간(사회)-기후(자연), 기후(자연)-인간(사회)의 연결고리가 강화됨을 보여준다. 인류세를 인지하기 이전까지 우리가 관념화하고, 실천해온 분리 분절의 틀이 더는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지금의 기후위기가 뼈아프게 드러내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이 위기를 지속하게 하는 이유의 기저에 놓여 있는 이 이분법적 생각과 그에 의지한 행위가 철저히 재고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164~165쪽

이분법적 자연의 관점 위에 근현대 인류가 동의하고 실천한 근대성이 연결되어 있고, 그 위에 엄청난 무게의 근현대 문명이 있고, 그 문명을 회전시키기 위해 석탄, 석유, 가스를 태우고 폭발시켜 왔다. 이 합의와 행위와 투기(投棄)가 모여 인간은 이제 지구의 역사에도 영향을 미치는 행위자가 되었다. 그 역사에 큰 획을 그어 인류세라는 시대가 도래했다. 인류세는 근현대 문명이 쓰레기로 기록하는 시대다. 그 기록에 섭씨 1.5도 상승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지금 기입되려고 한다. 이것은 인류세의 지구사에 인간이 만들고 있는 무시무시한 무게의 흔적이다. 분해흡수를 못 하는 쓰레기는 무거워지고, 지구의 온도는 올라간다.
-158쪽

‘선진국’의 기준 자체가 탄소배출과 관련이 있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고 대량생산하며, 대량소비하는, 또한 플라스틱도 열심히 투기하는 것이 ‘선진국’이다. ‘선진국’의 개념부터 바뀌어야 한다. 기후 문제의 관점에서 보면 ‘선진국’은 잘 사는 국가가 아니라, 잘못 사는 나라다(띄어쓰기 주의). 과도한 탄소배출의 문제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준다는 것을 생각할 때, ‘선진국’은 인류세 시대의 가해 국가다. 홍수, 가뭄, 화재 등으로 생명을 앗아가는 것을 생각할 때 범죄 국가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177쪽

기후위기를 단지 인간의 활동이 만들어내는 쓰레기만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쓰레기 버릴 결심의 문제이기도 하다. 탄소, 플라스틱, 의류 폐기물 등 종류도 다양하고 양도 많은 쓰레기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생각, 행동, 언어가 중요하다. 지구의 온도를 들어 올릴 정도로 나도 버리고 너도 버리고 브라질 사람도 버리고 중국 사람도 버리고 영국 사람도 모두 버릴 결심을 하게 하는 이 쓰레기 투기 문명이 핵심적이다.
-187쪽

인간중심주의는 단지 ‘주의(主義)’가 아니다. 말뿐이지 않다. 생명과 생명, 아니 대상과의 관계를 규정하고 실제화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중심주의는 공간에서도 드러난다. 도시와 비도시의 관계는 인간중심주의를 형상화하고, 가시화한다. 인간이 사는 도시를 중심으로 그 바깥에 닭고기를 생산하는 축사가 있고, 또한 먹고 남은 닭뼈를 버릴 쓰레기장이 배치된다(닭뼈는 일반쓰레기로 분류된다). ‘주의’에는 ‘굳게 지키는 주장’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인간중심주의는 단지 주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인간중심주의가 형상화된 세계에 우리는 살고 있다.
-197쪽

몸은 특히 기후위기 시대의 세계함을 중층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점이다. 인간 몸은 비인간과 연루되는 몸이다. 쌀, 시금치, 돼지고기를 먹어서 몸을 만들고, 기운을 차리고, 활동을 한다. 먹기와 함께 입기도 몸의 중요한 행위다. 이것은 몸을 연장해서 몸 만들기를 하는 것이다. 목화, 거위털, 소가죽을 연결하여, 또한 폴리에스터 같은 비생물 존재를 연결하여 바지를 입고, 티셔츠를 착용하고, 롱패딩을 걸친다. 몸을 적절한 생활환경에 노출시키기 위한(따뜻하게 보일러도 때고, 시원하게 에어컨을 트는 행위까지 포함하여) 기거도 몸과 관련된 중요한 활동이다.
-201~202쪽

일상의 배출이 일상을 무너뜨리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일상의 문제를 다시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일상에 틀 지워진 분리 분절의 방식을 재고하지 않을 수 없다. 기후가 안녕하지 않으면 몸도 안녕하지 않다. 우리는 “기후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을 다시 가져올 수 있다. 몸과 기후를 함께 말하는 어법이 필요하다. 이미 기후에 몸을 말할 수도 있고, 날씨 기후를 말할 수도 있는 넘나듦이 있으므로, 우리는 기후를 중의적으로 말할 수 있다. 기후 안녕하십니까? 기후가 제한된 가변성 안에 있어야, 몸도 극단을 치닫지 않는다.
-228쪽

쓰레기통 앞에서 머뭇거리기는, 쓰레기로 버려질 것을 미리 생각하는 머뭇거림을 포함한다. 물건을 살 때부터 무엇을 투기하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사는 것은 이미 버릴 것을 예비하는 것이다. 테이크아웃하려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는 것은 플라스틱 컵, 뚜껑과 빨대 그리고 종이 컵홀더를 버리는 것을 준비하는 일이다. 물건을 살 때부터 버려질 것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 인류세, 즉 쓰레기의 시대다. 쓰레기통 앞에서 제대로 머뭇거리기 위해서는 살 때부터 머뭇거림이 필요하다.
-2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