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산학

사람들의 관심을 읽어, 새로운 연구 의제를 찾다

2026.10.28

인문‧사회과학 데이터 연구소 미디어학과 이훈 교수, 인문사회연구소지원사업 순수학문형 선정 (3)
뉴스‧댓글‧도서‧공연 데이터 분석해 사회 관심과 학술 축적의 간극 탐색
‘연구 공백 지도’ 구축해 의제 발굴부터 연구‧정책 연계까지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은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 역량을 강화하고 대학의 연구 거점을 육성하기 위해 ‘인문사회 분야 학술지원 집단연구군’을 지원한다. 2026년 신규과제에는 경희대학교가 주관하는 5개 연구과제가 선정됐다. 선정 과제는 민주시민교육, 인간 중심 AI, 지역사회 돌봄, 청년 정체성 갈등, K-컬처 등 다양한 사회적 의제에 주목한다. 경희는 선정 과제를 시리즈로 소개하며 연구의 배경과 내용, 향후 계획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사람들은 뉴스에 댓글을 남기고 책을 구매하며 전시와 공연을 찾는다. 사람들이 읽고 쓰고 이야기하는 것에는 그 사회가 지금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가 담긴다. 이러한 활동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디지털 데이터로 쌓인다. 하지만 이렇게 쌓인 방대한 데이터는 인문사회 연구 주제를 찾거나 정책 의제를 만드는 데 얼마나 활용되고 있을까.

인문‧사회과학 데이터 연구소 미디어학과 이훈 교수가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2026년 인문사회연구소지원사업’ 순수학문형 과제에 선정돼 「인간 중심 AI 기반 인문사회 의제 발굴 및 연구‧정책 연계 플랫폼 구축」 연구를 수행한다. 연구팀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남기는 디지털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사회적 관심을 포착하고, 이를 새로운 연구 의제로 발전시키는 체계를 구축한다. 사회의 관심과 학계의 연구 축적 정도를 비교해 아직 충분히 연구되지 않은 분야를 찾고, 이를 연구와 정책으로 연결하는 플랫폼도 개발한다.

정보는 넘치는데 사람들의 관심은 놓친다
연구의 출발점은 ‘정보 과잉’이다. 뉴스 댓글과 서평, 도서 판매, 전시·공연 예매 기록 등에는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을 두는지가 고스란히 담긴다. 하지만 기존 인문사회 연구와 정책 의제 발굴은 이러한 데이터를 충분히 활용하기보다 설문이나 인터뷰를 통해 새로운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식에 의존해 왔다. 관심을 보여주는 자료는 곳곳에 쌓이고 있지만, 이를 모아 사회 전체의 흐름을 읽어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생성형 AI의 확산으로 정보와 콘텐츠는 크게 늘었지만, AI 활용은 주로 결과물을 생산하는 데 집중돼왔다. 이 교수는 이를 ‘AI 피로’와 ‘의미 빈곤’으로 설명했다. 그는 “자료와 AI 활용은 늘었지만,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을 두고 무엇을 걱정하는지 읽어내는 일은 오히려 더 가난해졌다”며 “그 결과 연구 의제는 사회의 실제 관심보다 학계 안의 논리로 정해지고, 정책은 공론화된 뒤에야 대응하게 된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지난 1년간 포털 뉴스를 자동으로 수집하고 AI로 분석하는 체계를 운영했다. 어떤 기사에 댓글이 몰리고 어떤 주제가 새롭게 떠오르는지를 분석하면서, 사람들이 일상에서 남긴 데이터로 기존 조사만으로는 빠르게 파악하기 어려운 사회적 관심의 흐름을 포착할 가능성을 확인했다.

AI는 찾고 사람은 의미를 판단한다
이번 연구의 핵심 개념은 ‘인간 중심 AI’다. AI가 연구자를 대신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사람이 살펴봐야 할 지점을 찾아준다. 이 교수는 “AI가 방대한 자료 속에서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는 지점을 찾고, 그 관심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사람이 판단한다”며 “AI를 사람의 자리에 두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눈을 넓혀주는 자리에 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AI가 찾아낸 주제가 곧바로 연구 의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여러 AI 모델의 분석 결과를 비교하고 전문가가 일부 데이터를 직접 검토해 정확성과 편향 여부를 확인한다. 이번 연구에는 미디어학과 이훈·김관호·이종혁 교수와 미술학부 나형민 교수, 국어국문학과 남신혜 교수, 스마트관광원 황조혜 교수가 참여한다.

이들은 각자의 전문 분야를 바탕으로 AI가 도출한 주제의 맥락과 학술적 가치를 검토해 최종 연구 의제로 다듬는다. 연구팀은 이러한 검증 과정을 ‘인간 중심 게이트’라고 부른다. 이 교수는 “계량적 자동화와 학문적 판단을 분리하되 서로 검증하게 하는 것이 인간 중심 AI를 구현하는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뉴스·책·공연에서 사회의 관심을 읽다
연구팀은 학술 자료뿐 아니라 사람들이 일상에서 남기는 ‘관심의 흔적’을 폭넓게 살핀다. 현재 연구소는 포털 뉴스 6개 섹션의 데이터를 하루 다섯 차례 자동으로 수집하고 있다. 앞으로 도서 판매와 서평, 전시·공연 예매 자료 등으로 범위를 넓혀 사회 현안뿐 아니라 문학·예술·문화 영역의 관심도 함께 분석한다.

수집한 자료는 대규모 언어모델을 활용해 주제별로 묶고, 해당 주제를 둘러싼 감정과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 등을 분석한다. 여기에 KCI와 Web of Science, Scopus 등 국내외 학술 데이터베이스의 정보를 결합해 각각의 주제가 학계에서 얼마나 연구됐는지도 살펴본다. 개인정보는 수집 단계에서 비식별화해 처리한다.

이 교수는 “사회의 관심은 얼마나 높은지, 학계는 얼마나 연구해 왔는지를 비교하면 아직 충분히 주목받지 못한 문제가 드러난다”며 “사회의 관심에서 출발해 연구 의제로 올라가는 과정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의 관심과 학술 축적 사이 ‘연구 공백’을 찾다
연구팀은 분석 결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연구‧정책 연계 플랫폼’을 구축한다. 핵심은 특정 주제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보여주는 ‘사회 관심 지수’와 학계의 연구 정도를 나타내는 ‘학술 축적 지수’를 비교하는 것이다.

사회적 관심은 높지만 관련 연구가 충분하지 않다면 이를 ‘연구 공백’으로 볼 수 있다. 플랫폼은 이러한 영역을 ‘연구 공백 지도’로 시각화해 새로운 연구와 정책 의제의 후보로 제시한다. 해당 주제를 후속 연구로 이어갈 수 있도록 기초 데이터도 함께 제공한다.

이 교수는 이를 사회의 관심을 연구 의제로 전환하는 ‘역의제설정’이라고 설명했다. 학계에서 먼저 질문을 설정하는 데서 나아가 사람들이 일상에서 보이는 관심을 출발점으로 삼아 연구가 필요한 문제를 찾는 방식이다.

연구팀은 발굴한 의제를 인문·사회·예술 분야의 실제 연구로 이어 논문과 정책 보고서 등의 성과로 연결할 계획이다. 이 교수는 “학계의 논리가 아니라 사람의 관심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며 “AI와 데이터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더 잘 이해하는 방향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플랫폼은 교내 구성원에게 먼저 공개해 공동연구와 학위논문 주제 발굴 등에 활용하고, 이후 학계와 정책기관, 사회 전반으로 범위를 넓힐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연구자가 자신이 구축한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는 양방향 연구 인프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국내에서 글로벌로, 인문사회 데이터 연구 거점으로
이번 선정은 연구소가 설립 첫해 구축한 데이터 수집·분석 체계를 장기적인 연구 기반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연구팀은 6년간 단계적으로 연구 범위를 넓혀갈 계획이다. 1단계에서는 국내 데이터를 중심으로 사회의 관심을 진단하고 연구 의제를 발굴하는 체계를 완성한다. 이후 북미와 유럽, 동아시아 등 해외 매체와 플랫폼으로 데이터 수집 범위를 확대해 세계가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한국과 관련한 어떤 사회·인문·예술적 주제에 관심을 보이는지도 분석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발굴한 의제를 연구와 정책, 콘텐츠로 확장하는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관련 자료를 선별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제작해 사회의 관심이 다시 연구와 활용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 교수는 “사람의 관심에서 출발해 새로운 의제를 발굴하는 인문·사회과학 글로벌 허브로 성장하고 싶다”며 “AI와 데이터가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