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학과 최민아 교수가 ‘글로벌인문사회융합연구 지원사업’ 연구그룹지원형에 선정됐다.
미디어학과 최민아 교수, 글로벌인문사회융합연구지원사업 연구그룹지원형 선정
젠더‧다문화‧지역 갈등 대상으로 적응형 AI 대화 실험
사회과학과 AI 기술 결합해 갈등 변화 메커니즘 규명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은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 역량을 강화하고 학제 간 융합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해 ‘인문사회 분야 학술지원 집단연구군’을 지원한다. 2026년 신규 과제에는 경희가 주관하는 5개 연구과제가 선정됐다. 민주시민교육과 인간 중심 AI, 지역사회 돌봄, 청년 정체성 갈등, K-컬처 등 다양한 사회적 의제를 다룬다. 선정 과제를 시리즈로 소개하며 각 연구가 던지는 질문과 연구의 의미, 향후 계획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과 직접 대화하는 대신, 그 관점을 구현한 인공지능(AI)과 대화를 나눈다면 상대 집단에 대한 인식은 달라질 수 있을까. 미디어학과 최민아 교수가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글로벌인문사회융합연구 지원사업’ 연구그룹지원형에 선정돼 「청년 정체성 갈등의 AI 매개 메커니즘: 적응형 대화 에이전트 설계‧실험‧시뮬레이션의 학제적 융합 연구」를 수행한다. 연구 기간은 3년으로, 간접비를 포함해 총 5억 6천만 원의 연구비를 지원받는다.
연구팀은 젠더‧다문화‧지역을 둘러싼 청년층의 정체성 갈등에 주목한다. 청년이 서로 다른 집단의 가치와 관점을 구현한 AI와 대화하고, 그 과정에서 상대 집단에 대한 이해와 태도, 감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실험적으로 살펴본다. 최 교수는 “AI로 사람을 특정 방향으로 설득하는 기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정체성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안전하게 대화하고 상대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AI의 조건과 원리를 밝히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젠더·다문화·지역, 청년의 정체성 갈등을 보다
이번 연구에서 말하는 정체성 갈등은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선다. ‘나는 누구이고 어떤 집단에 속한 사람인가’, ‘우리 집단은 공정하게 대우받고 있는가’라는 인식이 상대 집단에 대한 불신이나 위협감으로 이어지는 현상이다.
연구팀은 젠더에서는 공정성과 성역할, 다문화에서는 내국인과 이주민 사이의 문화적 경계와 위협 인식을 살펴본다. 지역에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기회 격차와 상대적 박탈감에 주목한다.
청년층을 연구 대상으로 삼은 것도 이들 문제가 현재의 삶과 미래 선택에 직접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젠더 갈등은 연애‧결혼‧출산 등의 생애 선택과 맞닿아 있다. 다문화 문제는 대학과 직장 등에서 경험하는 다양성과 연결된다. 지역 격차 역시 교육‧취업‧거주지 선택과 밀접하다.
AI를 정보 검색 도구에서 ‘대화의 매개자’로
청년층은 디지털 플랫폼과 AI를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최 교수는 “온라인 공간은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이지만, 알고리즘 추천이나 유사한 의견만 반복적으로 강화하는 ‘에코 챔버(Echo Chamber)’, 감정적인 메시지의 확산 등으로 갈등이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라며 “디지털 환경에서 갈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이해하는 동시에 같은 디지털 기술을 갈등 완화에 활용할 수 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AI를 단순한 정보 검색 도구가 아닌 서로 다른 집단과 관점을 연결하는 ‘대화의 매개자’로 바라본다. 이론적 배경에는 서로 다른 집단 구성원 간 긍정적인 접촉이 편견과 갈등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집단 접촉 가설’이 있다.
이번 연구는 최 교수가 앞서 수행한 가상현실(VR) 기반 집단 접촉 연구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그는 VR을 활용해 서로 다른 집단 간 접촉을 구현하고, 이러한 경험이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왔다.
최 교수는 “VR이 물리적으로 만나기 어려운 상대와의 접촉을 가상공간에서 가능하게 했다면, 생성형 AI는 상대가 나의 말과 반응에 맞춰 실시간으로 대화하는 새로운 형태의 접촉을 가능하게 한다”며 “AI는 접촉과 대화의 조건을 정교하게 설계하고 반복적으로 검증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사회적 접촉 매개체”라고 설명했다.
상대의 태도에 따라 대화 방식 바꾸는 AI
연구팀은 이를 위해 ‘적응형 대화 에이전트’를 설계한다. 일반적인 챗봇과 달리 상대의 태도와 정서, 대화 패턴을 고려해 대화 전략을 조정하는 AI다.
같은 주제라도 상대의 태도에 따라 적절한 대화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특정 사안에 강한 반감을 보이는 상대에게 곧바로 반대 의견을 제시하면 오히려 반발이 커질 수 있다. 이때 AI는 먼저 공통점을 찾거나 상대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의 관점에서 메시지를 다시 구성하는 등 전략을 달리할 수 있다. 최 교수는 “상대방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서로 다른 관점을 접할 수 있는 대화 조건을 찾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대화를 AI의 자율적인 판단에만 맡기는 것은 아니다. 사회 정체성 이론과 집단 접촉 이론, 설득 이론 등 사회과학 이론을 프롬프트와 대화 정책, AI의 응답 범위와 원칙을 설정하는 안전장치인 ‘가드레일(Guardrail)’ 등 실제 시스템의 설계 원리로 옮긴다. 최 교수는 “사회과학적 지식을 실제 AI 시스템의 설계 원리로 변환하는 부분이 이번 연구에서 사회과학과 컴퓨터과학이 만나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강조했다.
설계에서 실험, 다시 사회 시뮬레이션으로
연구는 ‘설계-실험-시뮬레이션’의 세 단계로 진행된다. 먼저 서로 다른 관점을 구현한 AI 페르소나와 적응형 대화 전략을 설계한다. 이어 실제 청년 참여자가 AI와 대화하며 태도와 정서적 거리, 상대 집단에 대한 이해 등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실험 데이터를 토대로 가상의 AI 에이전트를 구축한다. 다수의 가상 에이전트가 서로 대화하는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개인 수준에서 관찰한 변화가 집단에서는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를 탐색한다.
최 교수는 “연구 계획에서는 이를 ‘기존 태도 진단-현재 태도 변화-미래 태도 예측’이라는 시간적 흐름으로 구성했다”라며 “실제 참여자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 수준의 변화가 더 큰 사회적 수준에서 어떤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라고 설명했다.
장기적으로는 연구를 ‘사회 디지털 트윈(Social Digital Twin)’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실제 사회의 미래를 그대로 예측하는 기술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조건을 가상환경에서 바꾸며 사람들의 반응과 갈등 변화 가능성을 탐색하는 연구 환경이다. 최 교수는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기보다 여러 가능성을 미리 탐색하고 비교할 수 있는 연구 도구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사회과학과 AI 기술을 하나의 연구 체계로
이번 연구에는 미디어학과 최민아‧이두황‧이종혁‧이훈 교수와 연세대학교 컴퓨터과학과 박광현 교수가 참여한다. 미디어학의 이론적‧실증적 연구에 AI‧빅데이터와 데이터 시스템 분야의 전문성을 결합한다. 적응형 AI 에이전트 구현부터 대규모 데이터 처리와 시뮬레이션까지 사회과학적 실험과 계산적 방법론을 하나의 연구 체계로 연결한다.
최 교수는 앞서 미국 국립커뮤니케이션협회(NCA)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관련 연구를 진행하며 이번 과제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했다. 그는 “그동안 해왔던 연구와 작은 시도들이 조금씩 쌓여 더 큰 연구로 이어진 결과라고 생각한다”라며 선정 소감을 전했다.
연구팀은 젠더‧다문화‧지역에서 시작한 연구를 향후 세대와 계층 등 다른 사회갈등으로 확장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최 교수는 “궁극적으로는 AI를 더 똑똑하게 만드는 연구를 넘어, AI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연구가 되었으면 한다”라며 “각 연구자의 전문성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개별 연구의 합을 넘어서는 융합적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