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운명의 날 시계’ 발표해 온 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과학적 경고 넘어 인류 공동의 미래 향한 공적 실천 공로 높이 평가
경희학원, 9월 21일 유엔 세계평화의 날 시상식 개최
경희학원이 지난 6월 29일(월), 제2회 미원평화상 수상 기관으로 ‘세계원자과학자협회(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이 협회는 1945년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이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Julius Robert Oppenheimer) 등 과학자들이 핵기술의 윤리적 책임을 공론화하기 위해 설립한 독립 비영리 기관이다. 지난 80여 년 동안 과학적 통찰과 공적 책임을 바탕으로 인류가 직면한 실존적 위기를 세계에 알려왔다. 1947년부터는 인류가 자초한 파국까지 남은 시간을 상징하는 ‘지구 운명의 날 시계(Doomsday Clock)’를 매년 발표하고 있다. 이 같은 활동은 단순한 과학적 경고를 넘어 인류의 미래를 위한 실천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희학원은 이 점에 주목해 세계원자과학자협회(이하 원자과학자협회)를 제2회 미원평화상 수상 기관으로 선정했다. 이 협회와 경희는 서로 다른 출발점과 방식으로 활동해 왔지만, 지향은 다르지 않았다. 평화를 새로운 문명의 토대로 세우고 인류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변화의 첫걸음, 당면한 위기의 실상을 상호 연결의 지구적 맥락에서 찾는 일”
제2회 미원평화상 수상자 발표 행사는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열렸다. 미원평화상 소개 영상 상영을 시작으로 경과보고와 수상 기관 발표, 선정위원회 추천 사유 발표, 수상 기관 소개 영상 상영, 경희학원 조인원 이사장 축사, 9월 21일 열릴 시상식 및 세계평화의 날 기념행사 소개 순으로 진행됐다. 조인원 이사장, 이리나 보코바(Irina Georgieva Bokova) 미원평화상 선정위원장(제10대 유네스코 사무총장), 경희학원 각급 기관 기관장과 교원, 직원, 학생들이 현장을 가득 메웠다. 미원평화상 후원재단의 노상석 이사장과 임원, 경희국제재단 조병태 회장과 안병돈 이사장, 임원 등은 미국에서 실시간 웹캐스트로 참여했다.
이날 행사는 단순한 수상자 발표를 넘어 미원평화상이 지향하는 가치와 의미를 함께 공유하는 자리였다. 경희학원이 미원평화상을 통해 환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오늘의 시대를 성찰하고 인류의 미래를 모색하며 문명의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역사의 향로(向路)를 함께 열어나가자는 것이다. 조인원 이사장은 축사를 통해 이 점을 분명히 밝혔다.
“원자과학자협회의 진단처럼 오늘의 현실은 ‘상호 연결된 복합위기(complex and interconnected existential risks)’에 처해 있다. 변화의 첫걸음은 당면한 위기의 실상을 상호 연결의 지구적 맥락에서 찾는 일이다. 통합적 사유의 지평을 펼치는 일이다. 경희학원 설립의 서사 역시 유사한 이야기를 한다. 경희는 문명사적 난제 풀이의 단초를 주리(主理)와 주의(主意) 세계에서 찾았다. 자연의 이치가 지배하는 주리의 세계. 인간 의식과 실천 의지가 만들어 내는 주의의 세계.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자연의 이치와 인간 실존의 세계를 유기적, 통합적 관점에서 살피는 지혜의 숲을 찾아 나섰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 문명과 세계를 분리하지 않는 통합적 사유였다. 이 모든 것을 인지하는 의식 내면의 원천에 관한 깊은 성찰이다.”
조 이사장은 이어 “‘세계 내 모든 존재와 사건은 서로 연결돼 있다.’ ‘상관상제(相關相制), 상관상승(相關相乘)의 우주적 기제를 통해 생성과 소멸, 궁극의 조화를 이루어 간다.’ ‘인간 의식의 보편적 기저에 근접하려 노력할 때, 인류는 문명의 새 역사를 써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대전제를 담아낸 전일적 실존과 실천의 세계. 그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것이 경희의 역사이자 미래의 서사다. 경희학원의 사상과 철학, 실천적 세계관에 맞닿아 있는 원자과학자협회를 제2회 미원평화상 수상 기관으로 선정하게 된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 조인원 이사장 축사 “전일적 실존의 지혜 - 원자과학자협회 업적을 기리며” 전문 보기
선정위원회 추천, 경희학원 이사회 의결 모두 만장일치
“실존적 위협에 대한 인식 바꾸고 평화의 새 길 열어가고 있는가” 묻는 여정
미원평화상은 경희학원 설립자 미원(美源) 조영식 박사(1921~2012)의 평화 사상과 실천을 계승하고 지구행성사회의 미래를 위해 헌신해 온 인사 또는 기관을 현창하기 위해 2024년 제정했다. 미원평화상은 격년으로 다음 한 가지 이상에 해당하는 공적을 쌓은 개인 또는 기관을 수상자로 선정한다.
△변혁의 시대에 기존 사고와 접근의 패러다임을 넘어 학문적·교육적·실천적 관점을 새롭게 개척한 이들 △이러한 관점을 학문·실천으로 연결해 지구적 평화와 우주적 조화를 증진하고 세계시민사회에 선한 영향을 미친 이들 △인류, 특히 젊은 세대에게 영감을 주는 롤모델이 된 이들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근본적 번영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헌신한 개인과 기관이 후보가 된다.
제2회 미원평화상 후보 선정 절차는 지난해 9월 시작했다. 4개월간 국내외 학술기관과 시민사회의 저명한 인사들로 구성된 추천위원회를 통해 63명의 후보를 추천받았다. 세계 석학과 실천가로 구성된 7인의 선정위원회는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다섯 차례 심의를 통해 후보를 단계적으로 압축하고 정밀 검증을 거쳐 만장일치로 최종 후보를 경희학원 이사회에 추천했다. 이사회는 지난 4월 수상 기관을 심의하고 결정했다. 이사회 의결 역시 만장일치였다.
“미원평화상 선정위원회는 후보들을 검토하면서
기존의 평화 개념을 넘어 평화의 지평을 확장한 후보를 우선적으로 살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본 것은 그 가치와 실천이 꾸준히 이어졌는지였다.
그 과정에서 선정위원회는 “누가 인류의 실존적 위협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평화로 가는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는가?”라는
한 가지 질문을 거듭하게 됐다.”
김원수 경희학원 미원평화학술원 상임고문 겸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장이 미원평화상 경과보고에 이어 수상 기관을 발표했다. 그는 “선정위원회는 원자과학자협회가 과학의 언어로 평화를 외쳐온 80년의 역사, 그리고 전 세계 시민과 지도자들에게 위기의 실체를 직시하게 한 공로를 높이 평가했다”고 전하며, “미원평화상이 추구하는 것은 평화를 통한 실천이 오늘도 계속될 수 있도록 그 가치를 세상에 알리고 연대를 넓혀가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선정위원회를 대표해 이리나 보코바 위원장이 최종 후보 추천 이유와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선정위원회는 후보들을 검토하면서 기존의 평화 개념을 넘어 평화의 지평을 확장한 후보를 우선적으로 살폈다. 그리고 평화가 추구되는 인간 노력의 다른 차원들까지 아우르며 검토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본 것은 그 가치와 실천이 꾸준히 이어졌는지였다. 그 과정에서 선정위원회는 “누가 인류의 실존적 위협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평화로 가는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는가?”라는 한 가지 질문을 거듭하게 됐다. 과학에 근거해 인류 보편의 가치를 대변하고, 위기가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이르기 전에 경고하는 지혜와 용기를 보여온 원자과학자협회를 만장일치로 추천했다.”
원자과학자협회는 행사 직후 홈페이지를 통해 제2회 미원평화상 수상 소식을 알리며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이 상은 과학적 지식을 평화, 안보, 인류의 미래를 위한 실천으로 전환하기 위해 80년 넘게 헌신해 온 우리의 노력을 인정해 준 것이다. 앞으로도 실존적 위협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위협을 줄이기 위한 전문가 주도의 해결 방안을 전 세계 대중과 더욱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소통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조인원 이사장은 수상자 발표 행사에서 “원자과학자협회의 진단처럼 오늘의 현실은 ‘상호 연결된 복합위기(complex and interconnected existential risks)’에 처해 있다. 변화의 첫걸음은 당면한 위기의 실상을 상호 연결의 지구적 맥락에서 찾는 일이다. 통합적 사유의 지평을 펼치는 일이다. 경희학원 설립의 서사 역시 유사한 이야기를 한다. ‘세계 내 모든 존재와 사건은 서로 연결돼 있다.’ ‘상관상제(相關相制), 상관상승(相關相乘)의 우주적 기제를 통해 생성과 소멸, 궁극의 조화를 이루어 간다.’ ‘인간 의식의 보편적 기저에 근접하려 노력할 때, 인류는 문명의 새 역사를 써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대전제를 담아낸 전일적 실존과 실천의 세계. 그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것이 경희의 역사이자 미래의 서사다. 경희학원의 사상과 철학, 실천적 세계관에 맞닿아 있는 원자과학자협회를 제2회 미원평화상 수상 기관으로 선정하게 된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한다”면서 축사를 전했다.
양 기관 관통하는 문제의식 “오늘의 위기는 분절된 현상이 아니다”
원자과학자협회는 1945년 12월 10일 매거진 『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창간호를 발행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과학자와 정책 입안자, 대중을 연결하는 공론장을 만들고자 했다. 과학에 기반한 평화와 안보 논의에 모든 인류가 함께 참여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1947년부터는 매년 ‘지구 운명의 날 시계’를 발표하고 있다. 이 시계의 자정을 파국의 순간으로 설정하고, 자정까지 남은 시간을 통해 인류가 파국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80여 년 동안 핵무기 경쟁, 기후 위기, 파괴적 첨단기술 발전 등 인류가 직면한 생존과 실존 위협을 포괄적으로 반영하며 국제사회에 경각심을 일깨워 왔다. 선정위원회는 원자과학자협회가 위기를 관찰하고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전 세계가 이를 이해하는 언어 자체를 만들어 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조인원 이사장도 축사에서 이 부분을 짚었다. “‘지구 운명의 날 시계’는 인류의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가장 상징적인 지표 가운데 하나다. 인류가 오늘 어디에 서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이다. 협회는 2020년부터 시간 단위를 ‘분’에서 ‘초’로 전환해 오늘 우리가 마주한 위기의 긴박성을 더 분명히 알렸다. 올해 공표된 ‘자정 85초 전’. 역사상 가장 절박한 시간대다. 이번 발표는 전례 없던 실존적 위협의 실상을 단순히 전달하기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과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엄중한 현실을 인류가 함께 직시하자는 메시지다. 문제 해결을 위한 즉각적 공적 실천을 촉구하는 호소이기도 할 것이다. 바로 이 점에 원자과학자협회의 가장 큰 공적과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원자과학자협회는 오늘의 현실을 ‘상호 연결된 복합위기’로 진단한다. 조 이사장은 이러한 현실 인식에 공감하며 “인간이 만든 자연 재앙과 성장 신화를 이어가는 지구 산업문명의 질주. 이를 둘러싼 정치·경제·사회적 이해관계의 복잡한 역학. 이 오랜 현실의 구조적 관성이 서로 연결되면서 문명사적 난제의 복잡성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인류가 맞닥뜨린 유례없는 문명사적 위기. 그 위기를 헤쳐가기 위해선 지구적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 역사가 말해주듯, 세상 정치(politics of the world)의 대응만으론 역부족이다. 개별 시민, 세계 시민사회의 적극적 참여가 절실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오늘의 위기는 분절된 현상이 아니다. 인간과 자연, 과학과 윤리,
문명과 평화가 서로 맞물린 실존의 과업이다. 새로운 세계관이 필요하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사상과 철학을 요청한다.” 경희는 이 믿음을
창학의 서사로 삼았다.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의 치열했던 무력 충돌의 역사,
절망적 역사의 파고를 넘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문화세계를 꿈꿨다.
인류사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 “학문과 양심의 자유”를 염원했다.”
조 이사장은 이 같은 현실 인식이 경희학원이 원자과학자협회의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그는 “오늘의 위기는 분절된 현상이 아니다. 인간과 자연, 과학과 윤리, 문명과 평화가 서로 맞물린 실존의 과업이다. 새로운 세계관이 필요하다. 그 문제의식은 경희학원 설립 초기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면서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949년부터 설립의 초석을 놓기 시작한 경희학원은 전쟁과 분열의 시대 속에서 출범했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사상과 철학을 요청한다.” 경희는 이 믿음을 창학의 서사로 삼았다.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의 치열했던 무력 충돌의 역사, 절망적 역사의 파고를 넘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문화세계를 꿈꿨다. 인류사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 “학문과 양심의 자유”를 염원했다.
경희가 지향하는 ‘드넓고 자유로운 학문의 세계’는 현실에 귀속된 학문만이 아니라 상상과 지성의 열린 가능성을 펼치는 대안 세계를 말한다. 양심이란 화두도 유사한 맥락에서 비롯됐다. 개개인이 스스로 내면의 심연을 깊이 성찰하는 인간 의식의 길. 자신과 타자, 자연과 문명의 조화를 일궈내는 인간적 가치의 향로. “문화세계 창조”의 여정이 그렇게 시작됐다. 우주 내 인간 존재의 초월적 역량과 미래의 대안을 찾아 나섰다. 인간 의식과 양심의 변환(變換) 역량을 말해 왔다. 경희가 오랫동안 지켜온 정신은 “평화는 개선(凱旋)보다 귀하다”, “인간에겐 사랑을, 인류에겐 평화를”로 요약된다. 인류의 미래를 향한 경희학원의 정신세계이자 공적 실천을 견인해 온 역사와 전통의 동력이다.
“우리 모두의 지혜가 필요하다. 전일적 실존의 지혜를 찾아서”
경희의 정신세계와 실천세계는 원자과학자협회의 활동에서도 확인된다. 인류의 미래를 향한 과학적 통찰과 공적 책임이라는 가치는 경희가 오랫동안 지켜온 정신과 궤를 같이한다. 두 기관이 공유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시대를 맞아 인류의 미래를 향한 공적 책임 의식을 근간으로 문명사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이번 행사에서 처음 제기된 것이 아니다. 조 이사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자리에서 인류가 맞닥뜨린 유례없는 문명사적 복합위기를 지속적으로 경고해 왔다. 과학기술의 급진적 발전과 산업문명 확산은 유례없는 삶의 편익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 이면엔 지구상 거의 모든 존재의 운명을 가를 실존적 위기가 깊어지고 있다. 최근 우리가 직접 체감하는 현실의 변화는 ‘진화 혹은 절멸’, ‘평화 혹은 붕괴’라는 대단히 엄중한 선택지를 우리에게 남겨줬다. 절멸, 붕괴를 향해 가는 문명의 위기는 결국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이 그의 시선이다.
조 이사장은 이번에도 “우리 선대가 볼 수 없었던 광활한 우주의 심연을 살필 수 있는 과학기술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졌다. 첨단기술의 빠른 진전은 지구행성 사회의 시공을 초월한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특히 Quantum AI의 출현 가능성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우주 최소 기본 입자, 혹은 상태 연산을 가능하게 할 첨단기술의 출현이다. 그간 풀지 못했던 인류의 난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례적인 문명사적 기회는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문명의 ‘거대 가속’이 종전의 성장과 팽창 신화만을 재촉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더욱더 불투명해질 수 있다. 초 단위로 재앙에 다가서는 오늘의 위기.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위대한 인류의 문명사적 유산을 지구상 존재의 공공선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라는 문제의식 제기와 함께 “우리 모두의 지혜가 필요하다. 현대사회의 관성적 사유와 제약을 넘어설 수 있는 지혜의 발견이 절실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경희는 전일적 실존과 실천의 세계를 말했다. 그 세계관은 원자과학자협회의 활동과도 만난다. 원자과학자협회는 인간이 초래한 실존적 위협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응·관리 방안에 대한 분석을 함께 제시하며 위기를 되돌릴 가능성을 모색해 왔다. 과학에 근거한 이유와 희망을 제시하면서 끊임없이 우리의 노력으로 ‘지구 운명의 날 시계’를 되돌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위기 극복의 주체로서 시민의 행동과 참여를 강조한 것이다.
그 가능성은 역사 속에서도 확인된다. 실제로 인류는 ‘지구 운명의 날 시계’를 되돌린 역사가 있다. 1947년 자정 7분 전으로 시작된 이 시계는 수소폭탄 실험이 단행되고 핵무기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1953년 자정 2분 전까지 빠르게 자정에 가까워졌으나, 냉전 종식 직후인 1991년 자정 17분 전으로 물러났다.
미원평화상 선정위원회를 대표해 이리나 보코바 위원장이 최종 후보 추천 이유와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선정위원회는 후보들을 검토하면서 기존의 평화 개념을 넘어 평화의 지평을 확장한 후보를 우선적으로 살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본 것은 그 가치와 실천이 꾸준히 이어졌는지였다. 그 과정에서 선정위원회는 “누가 인류의 실존적 위협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평화로 가는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는가?”라는 한 가지 질문을 거듭하게 됐다. 과학에 근거해 인류 보편의 가치를 대변하고, 위기가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이르기 전에 경고하는 지혜와 용기를 보여온 원자과학자협회를 만장일치로 추천했다.”
“개개인이 선택하고 행동하는 주체라는 사실 깨달아야 한다”
알렉산드라 벨(Alexandra Bell) 원자과학자협회 회장 겸 최고경영자는 기관 소개 영상에서 “우리가 ‘지구 운명의 날 시계’를 통해 가장 중요하게 깨달아야 할 점은 개개인이 선택하고 행동하는 주체라는 사실이다. 우리 각자가 시계를 되돌리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과거에도 시계를 되돌릴 수 있게 한 것은 개인들이었다. 개인이 속한 여러 그룹과 공동체의 압력이었다. 전 세계 사람들은 위험을 줄이기 위해 더 과감한 조치를 취하라고 지도자들을 압박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모든 것은 문제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무엇이 위협인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에서 출발한다”면서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이 행동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원자과학자협회는 냉전 초창기부터 국가와 이념을 초월해 과학자들을 한데 모았다. 정치가 아니라, 핵무기가 초래할 수 있는 결과에 대한 공통된 인식이 그들을 움직였다. 아인슈타인이 창설하고 오펜하이머가 초대 위원장을 맡은 원로후원자 위원회(Board of Sponsors)를 중심으로 실존적 위협과 관련된 대화를 꾸준히 이어왔다. 이 위원회에는 역대 40명 이상의 노벨상 수상자가 참여했다.
핵무기의 파괴력을 목도한 20세기 과학자들은 과학을 전문 지식의 영역에만 가두지 않고, 그 지식이 인류와 지구의 운명에 미치는 결과까지 책임져야 할 공적 실천으로 확장했다. 이들은 냉전의 이념적 대립과 국경을 넘어 지구사회를 하나의 행성적 운명 공동체로 바라보며, 핵 군비 통제와 기후 위기 대응, 기술 위험 관리가 어느 한 국가나 학문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인류 공동의 과제임을 일깨웠다. 원자과학자협회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과학자·외교관·안보 전문가와 정책 결정자를 연결하며, 과학적 지식을 지구적 책임과 공동의 정책 행동으로 전환하는 가교 역할을 해 왔다.
이 밖에도 원자과학자협회는 ‘Next Generation Initiative’와 ‘Arts + Science Initiative’를 통해 다음 세대가 지구사회의 행성적 실존 위기를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해법을 상상하며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참여와 실천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보코바 위원장은 “선정위원회는 원자과학자협회가 이룩한 성과뿐 아니라 어떻게 그 성과를 이어왔는지에 대해서도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1963년에는 원자과학자협회의 반핵 캠페인이 여론 조성에 기여하면서 미국과 소련, 영국의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PTBT) 체결 여건을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 많은 이들이 기후 위기를 안보 문제와 별개의 영역으로 보던 2007년부터 기후 위기를 ‘지구 운명의 날 시계’의 판단 기준에 포함시켰다. 2017년에는 인공지능, 사이버, 생명공학 등 첨단기술 위험도 시계의 산정 요인에 추가했다. 선정위원회는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연관성을 꿰뚫어 보고 먼저 행동해 온 데 탁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보코바 위원장은 “그 행동에 결국 세계는 귀를 기울인다”고 강조하면서 “미원평화상은 평화란 단순히 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문명이 존재하는 상태라고 믿었던 경희학원 설립자의 유산을 기리는 상이다. 지식과 용기, 진리에 대한 두려움 없는 헌신이 필요한 일이다. 원자과학자협회는 지난 80년 동안 그 믿음을 행동으로 이어왔다”고 말했다.
‘평화는 개선(凱旋)보다 귀하다’
경희학원이 제2회 미원평화상 수상자 발표일을 6월 29일로 정한 데에는 특별한 역사적 의미가 있다. 45년 전 이날, 경희학원 설립자는 코스타리카에서 열린 제6차 세계대학총장회(IAUP) 총회의 기조연설 ‘평화는 개선보다 귀하다(Peace is more Precious than Triumph)’를 통해 유엔 ‘세계평화의 날’과 ‘세계평화의 해’ 제정을 제안했다. 당시는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 핵전쟁의 가능성이 고조되던 시대였다. 경희학원 설립자는 기조연설에서 ‘평화 사상을 고취해 인간의 마음을 바꾸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쟁 대기(大氣)’를 ‘평화 대기’로 전환하기 위해 유엔 세계평화의 날과 해 제정을 제안한 것이다. 유엔 세계평화의 날과 해는 1981년 11월 30일 열린 제36차 유엔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제정·공표됐다. 유엔 세계평화의 날과 해 제정에는 학문과 실천을 통해 평화로운 인류사회의 미래를 지향하는 경희학원의 정신과 열정, 헌신이 담겨 있다.
당시 전환 기류를 만들어 내기 위해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힘을 모았다. 냉전은 종식됐고, ‘지구 운명의 날 시계’의 바늘을 거꾸로 되돌리며 파국의 순간에서 한발 멀어졌다. 인류는 잠시나마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앞서 조인원 이사장이 지적했듯 핵무기 고도화와 확산, 핵전략 망 구축은 멈추지 않았다.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기후 위기와 생물권·환경 훼손은 나날이 깊어만 간다. 인공지능과 생명과학은 새로운 문명의 가능성을 열었지만, 동시에 인류 실존의 미래를 위협할 파괴적 기술로 오용될 소인(素因)을 안고 있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새로운 의식과 실천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대다. 새로운 협력의 길, 더 나은 미래의 길을 찾아 나서는 일은 오늘날 우리 시대의 문명사적 과업이다.
“경희학원은 지난 세기 전쟁과 폭력의 참화 속에서도
평화를 갈망하며 인간의 존엄과 가능성을 지켜 온 인류의 빛을
오늘에 이어가기 위해 미원평화상을 제정했다. 지구사회가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아갈 ‘문화세계의 창조’를 필생의 과업으로 삼았던
설립자의 뜻을 계승해 인류의 실존 위기가 깊어지는 지금
평화를 다시 문명사적 과업으로 세우고 지구행성사회가 함께 열어갈
새로운 평화의 지평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러한 시대적 문제의식 속에서 경희학원은 미원평화상을 제정했다. 지난 세기 전쟁과 폭력의 참화 속에서도 평화를 갈망하며 인간의 존엄과 가능성을 지켜 온 인류의 빛을 오늘에 이어가기 위해서다. 지구사회가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아갈 ‘문화세계의 창조’를 필생의 과업으로 삼았던 설립자의 뜻을 계승해 인류의 실존 위기가 깊어지는 지금 평화를 다시 문명사적 과업으로 세우고 지구행성사회가 함께 열어갈 새로운 평화의 지평을 모색하고자 한다.
경희의 평화 유산은 오늘날에도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공감을 얻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상원에서 6월 29일(현지시간) ‘세계평화의 날 결의안(SR 113)’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 결의안은 최석호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22명의 주 상원의원이 공동 발의했다. 결의안에는 유엔 ‘세계평화의 날’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평화와 국제 협력의 가치를 확산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세계평화의 날과 해’ 제정을 처음 제안한 경희학원 설립자의 역사적 공헌을 공식적으로 기리는 내용도 포함됐다.
미원평화상 시상은 학문과 평화의 역사와 실천을 오늘로, 미래로 이어가겠다는 경희의 의지를 담고 있다. 제2회 미원평화상 시상식은 9월 21일 유엔 세계평화의 날을 기념해 개최하는 ‘제45회 세계평화의 날 기념 국제회의 - Peace BAR Festival’에서 진행한다. 수상 기관에는 본상 ‘평화의 지구’ 조각상(경희 동문 박은선 작가 작품)과 부상 ‘세계평화 후원금’(20만 달러)을 수여한다. 후원금은 재미 경희 동창회가 결성한 미원평화상 후원재단이 모금해 마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