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 77주년 기념 중앙도서관 인문학 특강 개최
사학과 강인욱·물리학과 김상욱 교수, 도서관과 책의 의미를 역사와 과학의 관점에서 조명
AI 시대에 지식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 AI 기술이 정보 검색과 분석을 넘어 인간의 사고와 일상 전반으로 확장되면서, 지식을 접하는 방식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그러나 지식을 어떻게 이해하고 판단할 것인지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중앙도서관이 개교 77주년을 기념해 도서관과 책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중앙도서관 인문학 특강은 중앙도서관 1층 실감미디어 공간에서 열렸다. 특강의 주제는 <도서관을 다시 보다: AI 시대, 지식의 가치에 대하여>였다. 사학과 강인욱 교수와 물리학과 김상욱 교수가 강연자로 나서 도서관, 책, 기록, 지식의 의미를 각자의 학문적 시선으로 풀어냈다.
이번 강연은 경희 구성원과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중앙도서관은 지난 5월 15일부터 일주일간 사전 신청을 받았다. 신청자 중 60명을 추첨해 자리를 배정했고, 현장은 만석을 이뤘다.
문자 이전의 기록에서 도서관의 기원을 찾다
첫 번째 강연은 중앙도서관장을 맡고 있는 강인욱 교수의 ‘고고학이 바라본 도서관의 기원’이었다. 강 교수는 “글자가 없던 시대에도 인간은 기록을 남기고 지식을 공유해 왔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동굴 벽화와 암각화를 문자 이전의 ‘기억의 저장소’로 소개했다.
강 교수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기록하고 남기고 공유하려는 욕망을 지닌다”라고 말했다. 인류 역사에서 문자가 등장한 시기는 비교적 최근이다. 그러나 문자가 없었다고 해서 기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인간은 동굴 벽화, 암각화, 기호, 그림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남겼다.
알타미라와 라스코 동굴 벽화, 초원의 암각화 등이 예다. 빙하기의 인류는 동굴 안에서 생활하며 사냥의 기억과 동물의 움직임을 그림으로 남겼다. 유목민들은 이동로와 사냥터, 신성한 장소에 대한 정보를 바위에 새겼다. 강 교수는 이러한 흔적을 “원시 도서관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기록은 단순한 보존을 넘어 미래를 예측하는 데도 쓰였다. 강 교수는 갑골문자를 예로 들며, 고대인들이 국가의 중요한 일을 점치고 질문과 결과, 실현 여부를 체계적으로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간은 과거의 지식을 통해 미래를 예측해 왔다”라며 기록의 축적이 지식의 체계화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도서관은 인간의 흔적이 남는 공간
강 교수는 도서관을 ‘책을 보관하는 공간’으로만 보지 않았다. 인간의 욕망, 예술적 감각, 지식, 일상의 흔적이 함께 남는 공간으로 설명했다. 실크로드에서 발견된 낙서, 고대의 필사 흔적, 바위에 새긴 이름과 그림도 모두 인간이 남긴 기록의 일부였다.
그는 바벨탑과 고대 신전, 수도원의 도서관을 언급하며 도서관이 역사 속에서 기록과 권력, 종교, 지식의 중심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도서관은 인간이 경험을 정리하고 기억을 보존하는 공간이었다.
강 교수는 “디지털 기기가 보편화된 시대일수록 기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서 디지털 기기 사용이 늘며 한자를 직접 쓰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진 사례를 언급했다. 편리한 기술을 활용하되, 인간이 오랜 시간 쌓아온 기록의 지혜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는 “기록하는 것과 기억하는 것은 인간의 권리이며, 인간의 진화를 이끌어 온 힘”이라고 말했다.
강인욱 교수는 ‘고고학이 바라본 도서관의 기원’을 주제로 문자 이전의 기록과 지식의 축적에 대해 강연했다.
책은 인간의 생각을 바꿔 왔다
두 번째 강연은 김상욱 교수의 ‘AI 시대, 책을 왜 읽어야 할까’였다. 김 교수는 역사 속에서 책이 인간의 생각과 사회를 어떻게 바꿨는지 설명했다. 알렉산더 대왕이 『일리아드』를 곁에 두고 살았던 일화, 유대교와 경전의 탄생, 구텐베르크 인쇄술과 종교개혁 등을 예로 들었다.
김 교수는 책이 단순한 정보 전달 수단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먹는 것이 내 몸이라면 내가 읽은 것이 내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은 읽은 것을 통해 생각을 만들고, 세상을 해석한다는 의미다.
문자 문화는 인간의 사고방식도 바꿨다. 김 교수는 글이 말을 단순히 기호로 옮긴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글은 머릿속 생각을 눈앞에 펼쳐 보이게 하는 도구다. 글로 쓰면 생각의 앞뒤를 살필 수 있고, 더 긴 논리도 이어갈 수 있다. 그는 “깊은 생각과 사고는 문자 문명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수학과 논리학도 문자를 바탕으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문자 없이 복잡한 논지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문자 문명이 인간의 뇌와 사고를 재구조화했다는 것이다.
짧은 정보보다 중요한 것은 맥락
김 교수는 짧은 영상으로 지식을 소비하는 방식이 깊이 있는 사고를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짚었다. 1분짜리 영상을 많이 본다고 해서 지식이 맥락으로 남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는 “지식을 맥락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필요하고, 이야기는 책 속에 있다”라고 말했다.
책은 사회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인쇄술은 종교개혁을 확산시켰고, 책과 문서는 권력의 보편화와 민주화에 기여했다. 김 교수는 “민주주의는 개인의 이성적 판단과 깊은 사고를 전제로 한다”라고 설명했다. 책 읽기가 시민의 사고력을 키우는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AI 시대에도 책의 가치는 이어진다”라고 강조했다. AI가 정보를 빠르게 제시하더라도, 그 정보를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은 인간에게 필요하다. 그는 “책이 과거에도 중요했고, 현재와 미래에도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학생 질문으로 이어진 AI 시대의 인간다움
강연 후에는 두 교수가 함께 대담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AI 시대의 인간다움, 인문학의 가치, 대학도서관의 역할, 대학생을 위한 추천 도서 등을 물었다.
한 학생은 ‘AI 시대에 인간만이 가진 본질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김상욱 교수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사고방식이 다르다고 답했다. 그는 인공지능이 많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답을 만드는 반면, 인간은 적은 정보로도 맥락을 파악하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계는 망설이지 않지만, 인간은 망설인다. 그런 망설임도 인간을 설명하는 중요한 특징일 수 있다”라고 답했다.
인문학의 가치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강인욱 교수는 인문학을 ‘인간 자신에 대한 성찰’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세상이 바뀔 때마다 인간은 다시 인간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라며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면 인문학은 평생 이어갈 수 있는 공부라고 말했다.
도서관은 판단하는 힘을 기르는 공간
대학도서관에서 독서보다 시험공부를 하는 학생이 많은 현실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두 교수는 사용 목적과 관계없이 도서관은 여전히 중요한 공간이라고 답했다. 강 교수는 “도서관은 마지막 남은 인간의 보루”라고 표현했다. AI가 제시하는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필요한 지식을 고르고 판단하는 힘은 독서를 통해 기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담에서는 대학 시절 읽으면 좋을 책도 소개됐다. 김상욱 교수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추천했다. 김 교수는 『사피엔스』에 대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책이자,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 책”이라고 말했다. 강인욱 교수는 『수호지』를 추천하며, 삶이 어려웠던 시대를 살아간 민초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넓힐 수 있다고 말했다. 특강은 저서 추첨과 사인회로 마무리됐다.
강인욱 교수와 김상욱 교수가 강연 후 대담을 통해 AI 시대의 지식, 책, 도서관의 가치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 AI 시대에 우리가 진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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