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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사회의 관계를 다시 묻다

의과대학 의예과 김진환 교수, 한국고등교육재단 신진학자상 수상
‘임상적 자율성의 이중적 성격’ 통해 한국 보건의료 갈등 구조 분석


2026.08.10

의과대학 의예과 김진환 교수가 한국고등교육재단(KFAS) 신진학자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한국고등교육재단 신진학자상은 박사학위 취득 후 독립 연구자로 성장하는 초기 단계 연구자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상이다. 김 교수의 연구 주제는 ‘임상적 자율성의 이중적 성격: 한국 의사-사회 관계와 보건의료 자원분배의 정치사회학’이다.

김 교수는 의사로서 보건정책을 연구하는 연구자다. 임상 현장과 정책 논의의 경계에 서 있던 그는 같은 보건의료 사안을 두고 의료계와 사회가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는 장면에 주목했다. 의료계는 국가가 의사를 과도하게 통제한다고 말하는 반면, 사회는 의사에게 지나친 자율성이 허용됐다고 비판한다. 김 교수는 “두 진단은 모두 부분적으로 옳다”며 “같은 세상을 살면서 인식이 이토록 갈린다는 것 자체가 분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문제 인식의 출발점을 설명했다.

의료 갈등을 바라보는 두 시선
김 교수는 한국 보건의료 갈등을 단순한 의사 수, 의료비, 지역의료 문제만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의사라는 전문직이 가진 ‘임상적 자율성’이 한국 의료체계 안에서 어떻게 작동해 왔는지를 살핀다. 임상적 자율성이란 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 무엇을 어떻게 할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전문적 재량을 뜻한다. 어떤 검사를 할지, 어떤 약을 쓸지, 어떤 치료를 권할지를 외부 지시나 이해관계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적 판단에 따라 결정하는 권한이다.

김 교수는 이 자율성이 의사라는 직업의 정체성과 깊이 연결돼 있다고 설명한다. 의사는 전문지식과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환자를 진료하고, 판단을 내리는 재량은 전문가의 자긍심과도 맞닿아 있다. 사회적 관점으로 보면 의사가 환자 최선의 이익을 위해서 결정한다는 ‘의료 전문가 주의(medical professionalism)의 핵심 가치를 인정하는 의미에서 그 자율성이 부여된다.

그러나 한국 의료체계에서 임상적 자율성은 경제적 수익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김 교수는 “이 지점을 도덕적 비난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임상적 자율성이 지닌 구조적 성격으로 이해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의사의 진료 자율성은 전문직 정체성을 지탱하는 기반이면서, 동시에 의료체계 안에서 수익을 만들어 내는 조건으로도 작동한다는 것이다.

전문직 자율성과 경제적 이익 사이
이 지점에서 한국 보건의료 체계의 복합성이 드러난다. 한국 정부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통해 거의 모든 병원을 건강보험 체계 안에 두고,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의 가격도 국가가 정한다. 외형상 국가 통제가 강한 체계다. 하지만 국가는 주로 의료서비스의 가격과 보험 적용 범위를 통제해왔다. 진료 현장에서 의사의 판단이 어떤 방식으로 수익과 연결되는지, 더 나아가 의료기관의 운영이 사회적 필요에 부합하는지까지는 통제하지 못한다.

김 교수는 바로 여기에서 의사와 사회의 인식 차이가 생겨난다고 본다. 의료계는 국가가 정한 수가와 규제의 제약을 받으며 강하게 통제받는다고 느낀다. 반면 사회는 의사들이 여전히 넓은 자율성과 상당한 수준의 보상을 받고 있다고 인식한다.

김 교수는 이러한 인식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이유를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의료계는 국가가 의료의 질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평균적 기준과 지침을 제시할 때, 이를 개별 환자에 대한 전문적 판단을 제약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환자의 상태는 모두 다르기 때문에 평균적 근거에 따른 관리는 임상적 자율성을 일정 부분 제한할 수 있다.

반면 사회는 의료계가 환자 중심적으로 자원을 배치하고 책임 있게 문제를 조정하기보다, 정부의 통제와 지원 부족만을 원인으로 돌린다고 느낀다. 여기에 비급여 진료와 과잉 진료에 대한 의심이 겹치면서 양쪽의 불신은 더욱 커진다. 김 교수는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른 것을 보고 있기 때문에 갈등이 반복된다”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전문가 집단과 대중 사이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는 상황도 갈등을 키운다고 봤다. 전문가가 보기에는 대중의 요구가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요구에는 나름의 불편과 이유가 있다. 김 교수는 “사람들의 요구는 당연하게도 의료전문가들의 언어와 다르다. 하지만 그 맥락을 읽어내고 논의로 연결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전문가의 언어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중을 논의 과정에서 배제하려는 힘이 작동할 때 갈등은 더 깊어진다”라고 설명했다.

김진환 교수는 ‘임상적 자율성의 이중적 성격’을 중심으로 한국 보건의료 갈등의 구조를 분석하고 있다.

의대 증원 갈등을 읽는 두 가지 조건
김 교수의 연구는 최근 반복된 보건의료 정책 갈등을 설명하는 분석 틀도 제시한다. 그는 의사 집단의 거부권이 강하게 작동하는 조건으로 ‘환전성 침해’와 ‘위협의 균질성’을 든다. 환전성 침해란 진료를 수익으로 바꾸는 통로가 위협받는 상황을 뜻한다. 위협의 균질성은 그 위협이 특정 진료과나 세대에 국한되지 않고 의사 집단 전체의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와 ‘의대 정원 확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추진은 의료계의 반발을 불러왔다. 비급여 진료가 수익 구조와 연결돼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비급여가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진료과마다 다르다. 어떤 과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만, 어떤 과에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김 교수는 이 때문에 급여 범위 확대 정책으로 인한 위협이 의사 직군 전체에 고르게 걸리지 않았고, 통합된 저항보다는 과별 협상으로 흡수됐다고 분석한다.

반면 의대 정원 확대는 특정 진료과에 국한되지 않는다. 의사 수가 늘어나는 문제는 진료과나 세대와 관계없이 직군 전체의 미래 이익과 직업적 지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으로 받아들여졌다. 김 교수는 “의대 증원은 모든 의사의 미래 이익을 함께 위협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라며 “위협이 균질하게 받아들여지기에 직군 전체가 하나로 결집할 수 있었고, 강한 집단적 반발로 이어졌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의대 정원 확대 논의가 찬반 구도로만 다뤄질 때 놓치기 쉬운 질문도 있다고 봤다. 특정 정권의 정책 선택을 넘어, 왜 의대 증원이 여러 정권에 걸쳐 강한 저항과 반복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추진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코로나19를 거치며 의료체계의 부담이 드러났고, 지방 소멸과 지역 격차 문제가 커지면서 의료가 어떤 정권이든 피하기 어려운 과제가 됐다”라고 봤다. 의대 증원 갈등은 단순히 의사 수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가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정부에 부담이 되는 의제가 됐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설명이다.

보건의료를 둘러싼 정치적·사회적 배열
김 교수는 그동안 코로나19 시기 의료 대응, 보건의료 자원분배에서의 지역, 전공의 이탈이 사망률에 미친 영향 등을 연구해 왔다. 주제는 달라 보이지만, 문제의식은 하나로 이어진다. 보건의료의 문제가 정치적·사회적·제도적 배열이 만들어 낸 결과라는 사실이다. 코로나19 대응 연구에서는 시장 기제가 위기 앞에서 필요에 맞게 조정하지 못했던 모습을, 지역 연구에서는 자원 배분 과정에서 지역이 호명되고 누락되는 방식을, 전공의 이탈 연구에서는 의사 집단행동이 사망률 변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분석했다.

이번 연구는 그 문제의식을 의사 전문직의 자율성, 보상 구조, 사회적 책임의 관계로 확장한다. 김 교수는 “지금의 연구는 한국 의료체계가 작동하는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의사 집단의 자율성과 보상 구조를 살핀다는 점에서, 앞선 연구들의 문제의식을 모아 사회적 설명을 추구하는 다음 단계”라고 설명했다.

통제가 아닌 새로운 사회 협약을 향해
김 교수가 궁극적으로 던지는 질문은 ‘무엇을 통제할 것인가’가 아니라 ‘의사와 사회의 관계를 어떻게 더 나은 모습으로 재구성할 것인가’이다. 그는 “의료 갈등을 전문성과 공공성의 대립으로만 바라봐서는 해법을 찾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전문성을 부정하면 의료의 질이 무너지고, 공공성을 포기하면 의료가 시장에 휩쓸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 교수는 의사의 자율성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료의 전문적 판단처럼 반드시 보호해야 할 자율성이 있는 반면에 그 자율성이 수익으로 전환되는 과정처럼 사회와 다시 협상해야 할 영역도 있다. 그는 “이 둘을 구분하지 않고 자율성을 지킬 것인지 통제할 것인지로만 다투면, 정작 지켜야 할 것은 위협받고 협상해야 할 것은 방치된다”라고 설명했다.

향후 김 교수는 한국 상황을 정확히 규명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임상적 자율성의 이중성이 한국 의료체계의 역사와 제도 속에서 어떻게 작동해 왔는지 사례를 통해 검증하고, 이후 국제 비교로 연구를 확장하고자 한다. 비교 대상으로는 영국과 대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 영국은 NHS(National Health Service)를 중심으로 병원 의료가 공공체계 안에서 운영돼 의사들이 제도적으로 한국과 다른 위치에 놓여 있다.

반면 대만은 한국과 유사하게 단일 건강보험 체계를 갖고 있지만, 건강보험 설계와 수가 체계의 경로가 달라 의사 집단의 반응이 한국처럼 격렬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봤다. 김 교수는 “한국 의사 집단의 반응이 상당히 독특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한국 특유의 제도가 만들어 낸 산물이라는 것을 설명해보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경계에서 길어 올린 새로운 질문
김 교수는 이번 수상을 앞으로 더 정진하라는 격려로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그는 “제 연구는 의학과 사회과학의 경계에 걸쳐 있어 어느 쪽에서도 온전히 자리를 잡기 어려운 주제”라며, “그런 연구를 알아봐 주셨다는 점이 무엇보다 감사하고 큰 용기가 된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앞으로도 경계를 넘나드는 연구를 이어가고 싶다고 밝혔다. 의학과 사회과학 사이, 진료 현장과 정책 논의 사이에는 어떤 분과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충분히 다뤄지지 못한 질문들이 많다. 김 교수는 “안에서만 보이는 것과 밖에서만 보이는 것을 함께 읽어내는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후속 연구자들에게도 경계에 서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는 “경계에 선다는 것은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누구도 던지지 않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며 “좋은 질문은 대개 그런 경계에서 태어난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