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마니타스칼리지, 조류 관찰 교양강좌 <캠퍼스의 새들: 조류를 통해 자연을 만나다> 운영
학생 60명 조별 탐조 활동 참여, 캠퍼스의 새 관찰하며 자연과 일상 새롭게 인식
쌍안경을 든 학생들이 캠퍼스를 천천히 걸었다. 익숙하게 지나치던 나무와 잔디밭, 건물 사이 공간이 이날은 새를 찾는 관찰의 장소가 됐다. 학생들은 조별 주제에 따라 캠퍼스 곳곳을 살피며 새의 움직임과 울음소리, 생김새를 기록했다.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새가 수업의 주제가 되는 순간이었다.
후마니타스칼리지는 올해부터 <캠퍼스의 새들: 조류를 통해 자연을 만나다>를 운영하고 있다. 이 수업은 캠퍼스 안에서 만날 수 있는 조류를 관찰하며 도시 속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생태적 관점에서 생각해 보는 강좌다. 학생 60명이 조를 이뤄 탐조 활동에 참여하며, 조별 주제에 따라 관찰 대상과 활동 방식이 달라진다. 최근 탐조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새로운 취미로 주목받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이론에서 관찰, 기록과 해석으로 이어지는 수업
수업은 강의실에서 캠퍼스 공간으로 확장된다. 한 학기 수업은 이론, 관찰, 기록, 해석, 공유의 흐름으로 진행된다. 초반에는 강의실에서 새의 분류와 진화, 형태적 특징, 행동, 생활사, 소리 등 조류 생태의 기초를 배운다. 탐조 문화와 관찰 예절, 기록 방법도 함께 익힌다.
이후에는 캠퍼스 현장 탐조 비중이 커진다. 학생들은 직접 캠퍼스를 걸으며 새를 찾고, 어디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기록한다. 정점조사와 선조사 같은 기본적인 조류 조사 방법도 경험한다. 이진원 교수는 “단순히 몇 종을 봤는가보다 무엇을 어떻게 관찰했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라며 “완벽하게 새를 동정(형태, 소리, 서식지 등을 관찰해 종을 구별하는 과정)하는 것보다 관찰한 내용을 스스로 기록하고 질문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에 초점을 둔다”라고 설명했다.
동시에 조별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학생들은 특정 서식지의 조류 다양성을 비교하거나, 캠퍼스 내 특정 종의 행동 특성을 관찰하는 등 각자의 질문을 작은 프로젝트로 발전시킨다. 관찰 결과는 기록지, 사진, 발표 자료 등으로 정리하고, 마지막 시간에는 조별 발표를 통해 공유한다. 평가는 중간·기말고사 외에도 과제와 발표 비중이 크다. 기본 개념 이해와 함께 실제 관찰 경험을 자신의 언어로 해석하고 연결하는 과정을 살핀다.
캠퍼스에서 관찰할 수 있는 새도 생각보다 다양하다. 참새, 멧비둘기, 까치처럼 익숙한 종뿐 아니라 박새, 쇠박새, 진박새, 곤줄박이 같은 박새류도 캠퍼스 숲에서 자주 관찰된다. 붉은머리오목눈이처럼 무리 지어 다니는 작은 새, 직박구리와 물까치, 되지빠귀처럼 소리로 먼저 존재를 알리는 새도 만날 수 있다. 계절에 따라 파랑새와 꾀꼬리 같은 철새가 나타나고, 나무가 많은 구역에서는 오색딱다구리나 쇠딱다구리가 나무를 두드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캠퍼스에서 새를 꾸준히 관찰해 온 학생들의 기록도 수업의 이해를 돕는다. 수업을 듣는 생물학과 21학번 이현민 학생은 서울캠퍼스와 천장산 일대에서 다양한 새를 촬영해 왔다. 그는 “경희 캠퍼스에서는 텃새와 나그네새, 여름 철새와 겨울 철새를 포함해 100종 이상의 새가 관찰될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학생들이 캠퍼스 안에도 새를 비롯한 여러 야생동물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들의 서식 환경에도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서울캠퍼스 뒤편 천장산에서 발견된 어린 참매. 참매는 수리목 수리과에 속하는 맹금류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이자 천연기념물 제323-1호로 지정돼 있다. 사진을 촬영한 이현민 학생은 어린 참매는 자주 관찰되는 새매와 달리 아주 드물게 목격되는 새라고 설명했다. 참매가 서식하는 지역은 참매가 먹을만한 새나 다른 동물이 풍부한 지역으로 서울캠퍼스에서는 주로 가을과 겨울에 관찰된다.
캠퍼스 가까이에 있는 자연을 배우다
강좌 개설에는 후마니타스칼리지의 교양교육 방향도 반영됐다. 김진해 후마니타스칼리지 부학장은 “캠퍼스 가까이에 있는 자연을 학생들이 직접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수업을 기획했다”라고 밝혔다. 캠퍼스에 자연이 넘치도록 가까이 있는데, 학생들을 강의실 안에서만 배우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 교수는 캠퍼스 안에서 탐조가 이뤄진다는 점을 이 수업의 중요한 특징으로 꼽았다. 그는 “많은 사람이 자연을 이야기하면 멀리 있는 산이나 바다, 국립공원처럼 특별한 장소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 생태계는 우리가 매일 생활하는 공간 안에도 이미 존재한다”라며 “캠퍼스 역시 하나의 작은 생태계”라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매일 지나가던 길에서 새소리를 듣고, 작은 숲과 건물 사이 공간도 새들의 서식지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하며 자연을 일상 안의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이 수업은 새를 통해 생태, 도시, 환경문제, 인간과 비인간 생명의 관계를 함께 생각하게 한다. 도시화와 조류의 적응, 인간과 새의 충돌, 생물다양성 감소 같은 문제도 학생들이 탐조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접하는 주제다. 이 교수는 “이 수업은 새를 매개로 인간과 자연, 도시와 생태, 그리고 자기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는 수업”이라고 말했다.
쇠딱다구리와 오색딱다구리가 캠퍼스 숲의 나무 구멍을 이용해 살아가는 모습. 이현민 학생이 촬영한 왼쪽 사진은 쇠딱다구리가 나무줄기에 붙어 있는 장면이며, 오른쪽 사진은 오색딱다구리 유조(어린 새)가 나무구멍 안에서 어미가 먹이를 물어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그는 “딱다구리류는 나무에 구멍을 파거나 자연적인 구멍을 이용해 둥지를 틀며, 캠퍼스 숲이 조류의 번식과 먹이활동이 이뤄지는 서식지임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보기 시작하는 순간
학생들의 변화는 수업이 진행될수록 뚜렷해진다. 이 교수는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으로 학생들이 ‘보이지 않던 것을 보기 시작하는 순간’을 꼽았다. 처음에는 새를 봐도 구분하지 못하고, 캠퍼스에 다양한 새가 있다는 사실도 잘 모르던 학생들이 몇 주 뒤에는 등굣길에 들리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처음에는 ‘이 새 이름이 뭐예요?’ 정도의 질문을 하던 학생들이 나중에는 ‘왜 이 종은 여기에서만 자주 보일까’, ‘왜 아침과 오후에 행동이 다를까’처럼 생태적인 질문으로 발전한다”라며 “그 변화가 단순한 지식 습득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조별 과제에서도 학생들의 관찰과 해석이 드러난다. 한 조는 “새들의 색으로 캠퍼스를 다시 그려보겠다”라는 주제를 제안했다. 노란색의 꾀꼬리가 많이 관찰되는 지역은 노란색으로, 파랑새가 자주 나타나는 공간은 파란색으로 표현해 캠퍼스를 조류의 색채 지도로 시각화하겠다는 아이디어였다. 이 교수는 “관찰 결과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표현하려는 시도였다”라며 “새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과정은 과학적인 활동이지만, 학생들이 공간을 감각적으로 이해하고 재해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라고 밝혔다.
문화관광산업학과 24학번 김소현 학생은 수업 이후 캠퍼스가 이전과 다르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수업 전에는 캠퍼스에서 들리는 새소리가 거의 다 비슷하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어떤 새가 우는 소리인지 조금씩 구별하게 됐다”라며 “맨날 다니는 곳인데도 갑자기 큰 숲처럼 느껴졌다”라고 말했다.
새를 보는 일, 주변을 다시 보는 일
탐조는 빠르게 지나치면 보이지 않던 움직임과 소리에 집중하게 만드는 활동이다. 이 교수는 “탐조는 결과를 빨리 얻는 활동이 아니라, 잠시 속도를 늦추고 주변을 천천히 바라보게 만드는 활동”이라며 “탐조할 때만큼은 휴대폰에서 눈을 떼고 바람 소리나 새소리에 집중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김소현 학생은 탐조를 통해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도 넓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자연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새들의 영역 다툼과 포식처럼 실제 생태계 안에서 일어나는 모습까지 함께 보게 됐다”라며 “일상에서 작은 여유를 느끼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이현민 학생은 탐조 활동이 캠퍼스의 생물상을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캠퍼스 안에서도 새를 포함한 수많은 야생동물이 함께 살아간다”라며 “이 수업을 통해 더 많은 학생이 새와 자연에 관심을 갖게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생태탐사동아리 ‘아리’에서 식물, 곤충, 조류 등을 관찰하고 있는 그는 앞으로도 조류 연구를 이어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캠퍼스의 새들: 조류를 통해 자연을 만나다>는 새를 배우는 수업이면서, 동시에 캠퍼스를 다시 보는 수업이다. 후마니타스칼리지는 이 강좌와 함께 <캠퍼스 식물의 이해> 등 캠퍼스의 자연을 교육의 장으로 삼는 교양강좌를 운영하며, 학생들이 가까운 자연을 생태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강의실 밖에서 시작된 배움은 익숙한 캠퍼스를 여러 생명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으로 인식하게 한다.
이진원 교수가 학생들과 함께 캠퍼스를 걸으며 쌍안경으로 새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