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설
끝의 시작, 간절함으로 빚은 내일
끝의 시작, 간절함으로 빚은 내일
오늘 학위를 받게 된 졸업생 여러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더불어 긴 폭염을 뚫고 이 자리에 함께하신 학부모님과 가족, 친지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 학생들이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교수님과 교직원 선생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존경하는 선배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교정 곳곳의 재치 있는 플래카드로 미리 축하를 하고 현장에 함께 온 후배들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졸업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하나의 매듭이 지어지고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출발점에 서기 때문입니다. 졸업식이 끝나면 여러분은 사회인이 되어 여러분을 필요로 하는 전 세계 각지의 공간으로 진출하게 됩니다. 그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며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관계의 재발견을 위해 노력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졸업식이라는 경계의 시간은 지난 대학 생활을 돌아보고,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미래를 내다보는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졸업생 여러분!
모두 잠시 눈을 감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신입생으로 캠퍼스에 첫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그 첫 마음을 돌이켜 보십시오. 어떤 표정과 마음이셨는지요. 저마다 다른 추억이 떠오르겠지만, 아마도 새내기 시절의 설레던 표정과 졸업하는 지금의 모습은 많이 다를 것입니다. 아름다운 봄날에 품었던 기대와 졸업하는 지금의 각오가 크게 달라지셨기를 바랍니다. 달라진 만큼 여러분이 학문적으로 성장하고 인간적으로 성숙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오늘’이 있기까지 여러분 곁에서 물심양면으로 여러분을 응원하고 격려해 주신 분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여러분의 오늘은 ‘나 홀로 골방’에서 각자도생(各自圖生)하며 혼자만의 힘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나’가 있기까지 실로 수많은 동료와 선후배, 교수와 직원, 지인과 무명인분들의 도움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자명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교육받은 지성인이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갖춘 성숙한 시민입니다.
존경하는 졸업생 여러분!
이번 후기 학위수여식은 지난 2월에 열린 전기 학위수여식만큼이나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그 이전 선배들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폐쇄적인 캠퍼스’의 상황 속에서 제한적으로 대학 생활과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두가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웠던 2020년 봄, 교수님들은 갑자기 온라인 강의를 준비해야 했고, 교직원 선생님들은 교문을 닫고 방역에 힘써야 했습니다. 학생 여러분이 감수해야 했던 고충이 제일 컸을 것입니다. 입학식을 하지 못했고, 동기와 선후배를 제대로 만날 수 없었으며, 교수님은 온라인으로만 겨우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코로나 시기는 어떤 기간이었는지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신종 감염병은 그 이전까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인간관계를 최소화시켰습니다. 물리적 거리 두기의 일상화와 사회적 네트워크의 단절 속에 자유로운 이동이 제한되면서 우리에게 익숙했던 초국경 시대의 질서가 얼마나 취약한 기반에 토대를 두고 있었는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개인과 사회의 건강을 지켜 내기 위해 우리에게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했습니다. 아울러 경제적 성장과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해 온 우리 문명의 탐욕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하게 했습니다. 이제 코로나 이전 시대에 꿈꾸었던 미래 세계와 결별하며, 코로나 시대와는 다른 삶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사랑하는 졸업생 여러분!
졸업 이후 여러분 앞에 펼쳐질 학교 밖 세상은 지금 여기와는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이 불안과 두려움을 유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대학에서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양과정을 체계적으로 이수했으며 수월한 전공 교육을 받았습니다. 후마니타스는 스스로를 발명하는 인간입니다. 탁월한 개인이자 타자와 함께하는 성숙한 시민이 되어, 새로운 문명 건설에 기여하는 지구적 실천인이 바로 후마니타스인입니다.
후마니타스 정신은 경희의 담대한 창학 정신과 이어져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문화세계의 창조’가 바로 우리 대학의 창학 정신입니다. 6·25전쟁의 포화 속에서 우리 대학은 물질문명과 정신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인류 문명의 새로운 길을 제시했습니다. ‘학문과 평화’를 두 축으로 온 인류가 염원하는 지구공동사회를 추구해 왔습니다.
우리 대학은 올해 개교 75주년을 지나고 있습니다. 1회 졸업생 45명으로 출발해 매년 5000명 이상의 미래 인재를 배출하는 국내 굴지의 명문 사학으로 성장했습니다. 잘살기운동, 세계대학총장회(IAUP) 설립, 인류사회재건운동, 세계평화의 날 제정, NGO세계대회 개최, 세계적 수준의 교양대학 후마니타스칼리지 설립, 달 탐사 인공위성 발사, 국내 최고 수준의 국제화 대학 등 경희 75년의 역사는 여러분이 자긍심을 갖기에 충분한 ‘담대한 여정’을 보여 줍니다. 앞으로 경희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개교 100주년 세계적 명문’을 향해 쉬지 않고 도약할 것입니다.
친애하는 졸업생 여러분!
최근 제33회 2024년 파리올림픽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지난 7월 26일부터 8월 11일까지 17일 동안 개최된 올림픽에서는 전 세계 206개국의 1만 500명이 32개 종목, 329개 경기에 참가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도 대표 선수 144명이 참가하여 ‘금 13, 은 9, 동 10’ 등 총 32개의 메달을 수확하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달성했습니다. 여기에는 경희 동문과 재학생의 헌신적인 노력과 결과도 보태졌습니다. 우리 동문인 전훈영(스포츠지도학과, 2013) 선수가 여자 양궁 단체전에서 ‘안정감 있는 금빛 활쏘기’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재학생인 박태준(태권도학과, 2023) 선수가 태권도 –58kg급에서 발군의 실력으로 ‘금빛 발차기’를 선보이며 금메달을 수상했습니다. 두 선수 모두 성실한 준비 과정을 거쳐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보여 준 결과물은 ‘실수 없는 완벽함의 추구’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는 승리’가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과정에서부터 결과에 이르기까지 더 나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더 높은 성취감을 찾아 가는 노력이 바로 탁월한 결과로 이어진 셈입니다. 여러분도 대학 생활 동안 충분한 노력과 분투의 과정을 거쳐 탁월한 실력을 갖춘 인재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여러분이 경이로운 경희의 미래가 되어 더 멋진 ‘금빛 인생’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동문이 되길 바랍니다.
정든 캠퍼스를 떠나는 졸업생 여러분!
저는 올해 총장에 취임하면서 ‘학과 간의 장벽이 없는 교육과 다학제·다기관·다국가 협업 연구’를 강조한 바 있습니다. 전환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문 간의 균형적인 발전을 기반으로 학과 간의 장벽을 없앤 혁신적인 교육과 더불어 융복합적 관점을 가진 학내외 협력 체계의 모색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취임 이래로 계열별 분과주의를 넘어서는 ‘융합 교육’을 전제로 ‘안정적인 열린 전공(무전공)의 도입과 후마니타스의 재탄생’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학부 연구생’의 발탁과 ‘대학원 AP 과목’을 통해 학부생의 대학원 수준 연구를 지원하는 연구력 강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전환 시대의 총장인 저는 ‘학술적 탁월성’과 ‘전 지구적 실천’의 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해 세 가지 주요 도전 과제를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첫째로 ‘전문적이고 민첩하며 열정적인 거버넌스 구축’을 위해 대학과 구성원의 성장을 견인하는 창의적인 인사 혁신 모델을 수립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재정의 다변화와 디지털 전환’을 위해 다양한 재정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기술을 선제적으로 도입하여 학습과 연구를 비롯한 행정 업무에 신속히 반영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경희 가치에 공명하는 소통’을 수행하기 위해 학생과 교수, 직원과 동문 등을 정기적으로 또는 수시로 만나 의견을 수렴하면서 경희의 변전과 성장 모멘텀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졸업생 여러분!
우리가 매일 만나는 일상의 풍경은 세계의 일부일 뿐입니다. 이 세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우리에게는 부분만이 아니라 부분과 전체 사이를 함께 들여다볼 수 있는 포괄적인 시각이 필요합니다. 전일적인 세계 인식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우리 주변에 있는 생명체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시작일 수 있습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지구 생태계는 개별 생명체가 각자 고유한 생명 역학을 유지하면서도 복잡한 시스템으로 연결된 하나의 커다란 유기체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분과 전체가 연결되어 있다는 전일적인 세계 인식을 통해 지구의 자연과 생명이 지닌 유기체적 관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더 나은 문명의 미래를 기획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대학의 교육은 환원론적 관점에서 전체를 세분화하여 분과별 학문 단위 전공을 기반으로 전문성을 강조해 왔습니다. 이제 분과 체제를 넘어서야 합니다. 양자역학에서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 현상은 ‘두 개 이상의 양자가 서로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호 의존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두 입자가 먼 거리에 있어도 계속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이 현상은 두 대상에 대해 동시적인 관심을 기울일 때 비로소 상호 연결된 하나의 전체상이 지닌 본질이 드러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많아지면 달라진다(more is different)”라는 말이 있듯이, 부분과 부분의 다양한 연결을 통해 지엽적인 시각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색다른 특이성을 발견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졸업생 여러분!
이제 여러분은 학문의 세계를 벗어나 현실 사회의 변화에 적응해야 합니다. 이때 타인과 세계로부터 인생을 배우려는 성찰적 탐구 자세가 필요합니다. ‘아직 잘 모르면 잘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정직한 태도로 새로운 질문을 계속 던질 줄 알아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아는 척’하면서 던지는 질문에는 이 세계에 대한 주관적인 경험과 해석이 배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me-first)’라는 이기적인 인생관을 가진다면,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한지에 대한 판단이 흐려져 공정하고 합리적인 인식이 결여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we-first)’라는 마음가짐으로 공동체적 윤리 의식 속에 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더 큰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겠습니다.
대학의 사명은 교수와 학생이 서로를 응원하며 나아가는 교학상장(敎學相長) 속에서 ‘상상력과 경험의 융화’가 자유롭게 개진되도록 유도하는 것에 있습니다. 창의적인 상상력이 젊은이들의 특별한 재능이라면 원숙한 경험은 지혜로운 교수자의 지식으로부터 나옵니다. 미래의 가능성을 넓히는 상상력의 활동은 단편적인 지식의 습득보다 중요합니다. 학습된 지식 사용의 범위는 다분히 제한적이지만, 자유로운 상상력은 지식의 한계를 넘어 광대무변하는 세계의 가능성을 무한히 확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졸업생 여러분!
지금은 디지털 시대입니다. 디지털 세상에서도 아날로그 세상에서처럼 ‘타인에게 보이는 나’와 ‘자신이 꿈꾸는 진정한 나’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타인의 기대와 나의 바람을 조율하며 자기 내면과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기획하고 실천하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미래의 나를 향한 간절한 태도입니다. 자신을 향한 간절함은 ‘오래된 기도’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선배이자 시인인 이문재 교수님이 있습니다. 국문과 78학번으로 이제 정년을 앞둔 여러분의 자랑스러운 선배 중 한 분입니다. 이문재 시인은 시 「오래된 기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 기도하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더불어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 기도하는 것”이며, 끝으로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지금 여기가 맨 앞』, 2014) 기도하는 것이라고 ‘오래된 기도’를 마무리합니다.
자신과 타인, 세계를 위해 기도할 줄 아는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미래는 여러분을 위해 존재합니다. 여러분이 우리의 미래이자 경이로운 경희의 미래입니다. 3만 5000여 명의 재학생을 비롯하여 1500명의 교수진과 1000명의 교직원이 여러분과 함께하겠습니다. 32만 경희 동문이 여러분의 든든한 배경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미래의 경희인과 함께 여러분의 더 멋진 미래를 응원하겠습니다. 오늘 새로운 미래를 향해 첫발을 내딛는 여러분께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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